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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하루하루

사순절 37일(4/12) 고난주간 수요일.

작성자 오지마을목사 등록일 2017-04-12 21:55:14 조회수 2,901회 댓글수 0건
파일 #1 고난3 37-2.jpg 첨부일 2017-04-12 21:55:14 사이즈 146.4K 다운수 1회


사순절 37일(4/12) 고난주간 수요일.
(눅22:49~51)

오늘은 사순절의 서른일곱 번째 날이며,
고난주간의 수요일입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실패했던 경험 가운데
대 부분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드러냄으로
관계나 일에서 패배자가 되거나 실패자로 끝난
경험들이 있습니다.

어느 때는 거짓된 모함을 받아서 억울해서
또 내가 한 일을 빼앗김에 분해서...
그냥 참고 넘어가면 마치 내가 잘못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 같아서 이기려고 싸우고 다투고
나를 변명하다가 결국에는 분을 냄으로
다 잃었던 경험들,

지지 않으려고 한 것인데 결과는 지고 말았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도 유치한 일들,
그로 인해해 사람이든 일이든 하나도 건지고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이기려만 하고 지지 않으려 하면 지게 됩니다.
어차피 때가 되면 육체의 삶은 지게 됩니다.
꽃이 진다는 의미가 그럴 겁니다.
아무리 향기롭고 예쁘고 화려해도 때가 되면
모두 지고 마는 꽃처럼, 우리도 그와 같을 진데
지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고 억울함에 분을 삭이지
못하면 오히려 그 생명력은 빨리 지고 말겁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보내며 우리가 부활의
새 생명으로 되살아날 모습은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평안한 마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제는 다스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상황이 있기 직전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모함을 받고 누명을 쓰고 체포되는 상황입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인간적인 모습으로 본다면
누명, 배신, 분노, 울화, 앙갚음이 당연합니다.
그나마 제자하나가 항변을 하며 칼을 휘둘러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 중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릅니다. 우리 같으면 나를 위해 앞장서
막아주는 사람을 고마워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이 마저도
참으라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며 오히려 자신의 편이 된
자를 나무라기까지 하십니다.

상황 그대로 본다면 참으로 어이없고 바보 같은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바보 같은 예수님은 잘린 귀로 살아가야 할
대제사장의 말고라는 이름의 종의 귀까지도
원래대로 고쳐 주십니다. 그는 성전의 일을 돌보고
대제 상의 일을 돕는 종이었습니다,
귀가 잘린 채로 살아간다면 그는 그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됩니다, 당시 신체의 어느 부위가 손상되면
흠이 있는 자가 되어서 성전에서의 일을 할 종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을 자신을 잡으러 온 자의
그 삶까지를 돌보셨던 겁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도 힘없고
연약하고 바보 같은 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그들에게 잡혀 고난을 당하신 후 십자가를
져야하는 거기까지가 아버지의 뜻이었고 당신이
받아야 될 잔이라는 것을 아시기에 내 버려두라는 것입니다.

뜻을 알면 다스릴 수 있습니다. 뜻을 모르니
혈기만 있는 베드로는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라고
예수님께는 여쭙기는 하고 답을 듣기도 전에
행동으로 분을 내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도는 열심으로 합니다.
주여 응답 주소서! 그리고 답을 듣기도 전에 마치
이루어진 양 아니면 내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고 살아갑니다.

내게 들리는 말들은 권면이든 가르침이든 귀에
거슬리고 눈에 껄끄럽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 바로 받아치고 내치고 분을 냅니다. 그리고
분을 삭이지 못함으로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반면에 자신은 아무 거리낌 없이 나오는 대로 말하고
표정 짓고 행동하고 오히려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상대에게 다시 성을 냅니다. 때로는 그럴 것
같아서라며 있지도 않은 일에 먼저 성을 내고
마음에 분을 품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잘나고 똑똑하고
많이 알아서 성을 내고 예수님은 못나고 모르고 바보라서
성을 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제 성도라면 바보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닮아야 합니다. 한때 그 어느 누구보다 분을
참아내지 못하고 내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던 시절,
날마다 사람들과의 관계와 무조건 받아주고 참아야 하는
목회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고
생각이 서럽고 울화가 치밀어 올라서 참 많이 힘들고
주저앉으려 할 때 나를 돌이키게 했던 그림 “바보예수”
'네가 나를 보고도'라고 나를 보시던 그 표정이
그 말씀이 지금의 다스림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덜 여문자로 아직까지는 내게
상처를 입힌 자나 나로 인해 상처 입었다 하는 자들을
귀를 만져 고쳐주신 예수님처럼 만져주지는 못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지는 것이고 인정하는 것 같은 마음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말씀까지는 따라 할 수 있는
다스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평안이었고 내게는
부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사순절 그리고 고난주간을 보내며
'바보 같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잠잠히 기다리고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평강과 진정한
부활의 새 생명의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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