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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순절의 스물두 번째 날입니다.

작성자 오지마을목사 등록일 2017-03-25 22:54:17 조회수 2,262회 댓글수 0건
파일 #1 22-2.jpg 첨부일 2017-03-25 22:54:17 사이즈 127.4K 다운수 3회

오늘은 사순절의 스물두 번째 날입니다.
(눅 23:39~41)

사람들은 누구나 내 안의 두 마음이 있습니다,
선과 악도 아닌 무언지 모를 부정적인 것과 희망적인 것, ...
뚜렷이 알 수는 없지만 근심함과 평안함
정확히 모르지만 반으로 나뉘어진 내 속의
두 마음 중에 어느 쪽이 더 깊은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이번 사순절을 보내면서
이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기를 바랍니다.
또 갈라선 양면의 마음 중 어느 것이 옳은지
분명하게 알게 되는 기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같은 범죄자인 두 사람이 예수님 양편에
함께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한 죄인은
그 발아래에 있는 자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
그들과 같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한번 해봐! 네가 구원자라며?’ 참으로 무지하고
객끼어린 모습입니다. 어차피 난 죽을 거
이판사판 되면 좋고 아님 말고 자포자기를 넘어서
객끼를 부리고 있는 겁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구원은 지금 당장에
힘든 상황을 벗어나는 거, 그 염소와 같은
범죄자는 사형만이라도 면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범죄자는
오히려 그를 나무랍니다, 내가 지은 죄는 벌을 받아
마땅한 것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예수님의
모든 행적을 옳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양과 같은 죄인은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것을 두려워 하지만
옳은 분의 선처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이 담긴 진정한 구원은 무엇입니까?
실패한 거 돌이키고, 아픈 거 낫게 하고,
망한 거 다시 일으키시고, 힘든 거 해결해 주시고,
배고프면 먹이고, 추우면 입히고,
고단하면 쉬게 해 주고? 아니요 이런 거는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겁니다.
좋은 사람도 할 수 있고 나쁜 사람들도 할 수 있고
사기꾼 강도 도둑놈 이단자들까지도 다할 수
있는 겁니다. 어디 한번 해봐! 라고 예수님을
감히 시험하려들고 객끼로 비아냥거리던 그
범죄자나 발아래에서 소리치는 군중들이나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과 관리들과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기로 나누던 군병들과 다를 바가 없는
행위이고 마음인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의 강도는 지금 겪게 될 죽음은
자기 행위에 따른 당연한 값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죄 없는 몸으로 죽음의 길을 가시는
예수만이 옳고 진실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부당함에 대한 보상이고 위안이 되지만
어떤 이에게는 불편한 것이고 패배라고 모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바다 밑에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3년만에야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진실의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한쪽은 그나마 위로와 위안이고
다른 한쪽은 아주 많이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더 늦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의 세계와
그 십자가 아래의 세상이 그러합니다.
십자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만 막으면 자신들이 이긴다고
지켜진다는 당장의 힘든 것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들이었습니다.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모르는 자들의 행위입니다.
하지만 지금 행악자들이 서있는 곳, 바로 십자가
아래의 죄악으로 가득한 그들이 서있는 그곳이
가장 구원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죄악이 가득한 곳에서 나는 죄입니다,
이들과 생각을 같이했고 행동했으며
이것이 참 편했습니다. 이제 이런 내 모습이
죽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니 마땅합니다! 라는
고백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 행악자들과 십자가에 달린 중죄인들 모두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바로 구원의 자리인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함께 달려있다고 해서 같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졌지만 진정한 구원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 바로 여기서 부터입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
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43:7) 아멘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구원을 받는 것이며
그 구원은 이전의 나의 모습들이 예수님의 뜻과 함께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우상을 죽이지 못하면 우리는
진리이신 주님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두 마음중 하나는,
성취하지 못한 억울함과 좌절, 때로는 그 좌절감이
다시 버팀으로 객기어린 모습으로 나타냅니다.
또 하나의 마음은 내 탓이오 하는 책임을 지려는 마음
그래서 다시 한 번의 기회를 바라고 그 기회가 온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도전 의식 같은
새로이 태어나는 희망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그 자기라는 우상을 버리면 그의 행동은 거룩해 집니다.
순수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인되어져서
세상에 대한 자기를 위한 욕심들이 사라진
죽은 이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성도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십자가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는 그 십자가에 나의 헛된 것들을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순절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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